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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지적 현장 시점 - 수필 [김씨 형님]으로 안전을 환기 시킨 음광석 건설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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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도 꿈도 공제회와 함께 지켜나가요

작년 10월, 민주노총 건설노조 안전 콘텐츠 공모전에서 1위를 차지한 음광석 건설근로자는 경력 7년의 형틀 목수다.

 

 

건설 현장과 현장의 동료들이 삶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그에게, 공제회는 여름날의 불볕더위도, 한겨울의 혹한 추위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동반자다.
 

 

형틀 목수로 ‘다시 시작’하게 해준 공제회 교육


 

기회는 아주 우연히 찾아왔다. 2015년 봄, 음광석 씨는 지방에서 통신장비 공사 업무를 하던 중이었다.

“이어지는 다음 공사를 위해 잠시 집에 들렀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웃이 공제회에서 주관하는 훈련과장이 있다며 형틀 목공 양성과정을 소개했어요. 그런 교육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목공일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은 얼마 안 가 한번 해보자! 하는 다짐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그는 안산의 건설기능학교를 찾았다. 4주간의 교육은 이론과 실습의 반복이었다. 망치질부터 목재 재단, 거푸집 설치까지 형틀 목공에 관한 기초 교육과 훈련은 제법 촘촘한 프로그램으로 짜여 있었다. 처음 접해보는 분야였지만 유사한 현장 경험과 실무 경력이 있던 터라 교육이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완성된 거푸집에 콘크리트 반죽을 붓고 굳는 시간을 거치는 양생 과정을 눈으로 직접 보니 신기했다.
 

스무 명의 교육생들과 이런저런 실습을 했던 기억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선명하다.


“철선 결속 방법이나 거푸집 설치 과정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어 좋았어요. 짧은 훈련이었지만 실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육 과정을 마친 그에게 공제회에서는 첫 현장을 소개해 주었다. 이제 막 위성 도시로 주목받기 시작한 수도권의 한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7월 중순 불볕더위의 아파트 건설 현장은 흐르는 땀을 의식할 여유도 없는 총성없는 전쟁터였다. 그늘 한 점 없고 거친 말이 오가는 현장에서 그가 목도한 것은 극한의 환경을 이기며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건설근로자들이었다. 현장의 주어진 모든 일, 그리고 그 일을 하며 느끼는 감각 하나하나를 새기며 그렇게 그는 형틀 목수로 첫발을 대디뎠다.



"그때는 김씨 형님, 지금은 음씨 형님"


 



‘형틀 목수’라는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갖게 된 날부터, 그는 블로그에 현장의 기억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초기에는 일기를 쓰듯 형틀 목수 일이며 헌책방 나들이에 관한 글을 올렸지만, 요즘에는 안전 관리에 관한 글도 이따금 올리고 있다. 반은 쓰고 싶은 욕구에서고, 반은 그래야 한다는 사명감에서다.

 


좋은 습관이 의미 있는 성취로 이어진 것일까. 그는 이번 건설노조 안전 콘텐츠 공모전에서 1위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김씨 형님] 이라는 친근한 제목의 수필을 통해서였다.


기능등급제가 시작되면서 주변에서 자격증 이야기들을 많이 하더군요. 마침 재작년에 건설안전기사와 건축기사 자격등도 취득해서 건설 현정의 안전관리자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잠시 형틀 목수일 대신 건설 현장 안전관리자 일을 도맡아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안전에는 각별히 주위를 기울이는 편이다. 주변의 친한 동료들에게도 콘트리트 못을 박을 때 보안경을 착용하라거나 소음 작업을 할 때 귀마개를 착용하라는 잔소리를 귀에 딱지가 얹을 만큼 한다.

유난을 떤다며 타박하는 동료들도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건설 현장의 안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지금 건설 현장의 안전은 추락, 전도, 협착 등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고에 대한 대책 위주입니다. 장기적으로 안전과 보건에 영향을 미치는 시력, 청력, 호흡기 질환 등은 건설 현장의 득성상 개인이 챙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환기하고자 수필을 쓴 것이고요.”

수필을 쓰려고 마음을 먹으니 문득 떠오르는 얼굴, 20년 전 건설 현장에서 잠시 함께 일했던 “김씨 형님”이다.

고아로 힘들게 커온 그는 자신의 아이들이 클 때가지 울타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절대 자신은 다쳐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면서 안전문제에 있어서는 남들이 유난스럽다며 약간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할 정도로 한치의 양보도 없을 만큼 깐깐했다.

“그땐 김씨 형님을 유난스럽게 존 적도 있고 모자라게 본 적도 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사고소식을 접할 때마다 늘 김씨 형님이 생각납니다”

 



헌책방 주인으로 사는 꿈


음광석 씨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실직으로 힘들어하던 지인에게 얼마 전 형틀 목공과정을 소개했다. 과정 수료 후 건설 현장에서 어엿한 기능공으로 일하는 지인을 보니 소개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삶의 중심에 건설 현장과 공제회가 들어서 있다. 공제회에서 지원하는 건강검진을 받을 때도 같은 생각이었고, 자격증 응시에 필요한 경력증면서를 제출해야 했을 때 공제회가 경력 관리까지 해주는 것을 보고도 같은 생각이었다.

“공제회는 저에게 여러모로 든든한 동반자입니다. 다양한 건강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데다 경력 관리를 대신해 주시도 하니까요. 공제회를 알기 전까지는 단순 일용직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공제회 덕분에 현장이 곧 직장이고 우리는 직업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열심히 일했던 건설 현장의 공사가 마무리되고 사람들이 자신만의 시간을 찾아갈 때, 땀의 무게가 더욱더 묵직하게 느껴진다는 음광석 건설근로자. 하루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먹걸리를 마시거나 휴일에 헌책방을 찾거나 등산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의 꿈은 은퇴 후 작은 헌책방을 차리는 것이다. 동네 골목을 점하고 있던 헌책방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시대지만, 책방을 드나들며 얻은 지식과 위안을 이제는 같은 방식으로 세상에 돌려주고 싶은 것이다.

“헌책방은 제게 언제든 숨어들 수 있는 아늑한 동굴이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지금도 어딘가에 존재하리라 믿어요. 그들을 위해 언제든 마음 편히 찾아들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해주고 싶습니다.”

※ 본 인터뷰는 건설근로자공제회 사보 [늘품 9호_2022 SPRING] 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부서: 혁신기획팀
연락처: 02-51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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